🐣 무엇이 본업이고, 무엇이 부업일까?
사진작가의 마음가짐을 품고 있지만, 평생 사진을 제대로 찍지 않다가 아름다운 피사체가 생기면서 비로소 사진 기술을 터득하게 된 건지, 아니면 아내와 아이들을 찍어주며 기술을 연마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작가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게 된 건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내 본업은 컨설턴트고, 부업은 사진작가다. 당연한 말이지만,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 대부분의 사진을 촬영한다.
본격적으로 미러리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결혼할 때 선물로 받은 카메라부터지만, 따지고 보면 20살 무렵 Nikon FM2로 옆 동아리 사진부 부장님께 사진의 기초 원리를 배우며 사진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진을 취미로 시작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되어간다.
내가 사진에 발을 들이게 된 이유는 사진의 디지털화라는 격변기에 내가 서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SLR에서 DSLR로, 그리고 DSLR에서 미러리스로 넘어가며 카메라 성능은 압도적으로 좋아지고 가격은 점점 합리적으로 변했다. 게다가 라이트룸과 같은 프로 편집 툴이 나 같은 아마추어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쉬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의 세계에 빠지게 된 셈이다.
사진을 시작한 건 20살, 컨설팅 일을 시작한 건 30살이다. 나이가 더 들면 컨설팅 일은 아마도 내려놓겠지만, 카메라는 내가 들고 다닐 수 있는 한 계속 손에 쥐고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내 본업이 컨설턴트가 아니라 사진작가고, 부업이 컨설턴트일지도 모르겠다.
📸️ 사진 찍기의 미학
사진 찍는 걸 흔히 카메라를 들고 나가 셔터를 누르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 생각에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사진’이라는 활동의 약 10%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날짜를 확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은 날을 선정해야 한다. 여기서 좋은 날씨란 햇살이 비치고 따뜻한 날을 의미한다. 날이 흐리고 추우면 표정도 몸도 경직되기 마련이다. 물론 춥고 눈 오는 날 사진 촬영이 가능할 때도 있고, 오히려 눈 오는 날만의 매력이 빛을 발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야외 촬영은 날이 좋은 편이 훨씬 유리하다. 굳이 따지자면 온도는 15~30도 사이가 적당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게 말이 쉽지, 어디 날씨가 우리 마음대로 되나? 그리고 원래 날씨라는 게 주중에는 화창하다가도, 주말만 되면 비가 오거나 흐린 경우가 다반사다.
설령 날씨가 좋다고 하더라도,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를 찾는 일은 또 다른 도전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장소는 더더욱 제한적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여러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거의 ‘우연’처럼 찍힌 사진들이 오히려 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경험상 뷰파인더로 볼 땐 아름다워 보이던 장면이 실제 사진으로는 별로였던 적도 있고, 반대로 큰 기대 없이 찍었던 사진들이 편집 후 환상적인 색감을 뿜어낸 적도 많다. 결국 사진도 인생의 다른 많은 일들처럼 ‘볼륨 게임’인 것 같다.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좋은 사진이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 사진과 글, 건축이 한데 어우러질 때
공간이 주는 힘은 한 번 경험해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2010년, 4개월 동안 유럽의 19개 국가를 돌며 총 60여 개 도시의 건축을 둘러봤다. 그 기록을 책으로 정리했는데, 제목은 ‘화이트 북’이다. (당연하게도 한강 작가의 ‘더 화이트 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느덧 14년이 흘렀다.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하학(Geometry)에 대한 기준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좋은 건축(Architecture)에 대한 기준은 꽤 많이 변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중에게 접근 가능한 건축이 그렇지 않은 건축에 비해 정확히 1만 배 더 훌륭하다고 본다.
그래서 건축 디자이너가 회사 건물을 설계했다고 하면 별다른 감흥이 없다. 어차피 회사 직원이 아닌 99.99%의 사람들은 그 건물에 들어갈 일이 없으니까. 반면, 박물관이나 공원처럼 대중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했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이 사이트에 소개된 공간들은 100% 접근 가능한 공간들이다. 시간과 날씨, 체력, 그리고 약간의 재정만 허락된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곳들이다.
어찌 보면 이 사이트는 내가 믿는 신념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들을 종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아름다운 건축이 인간 세계를 넘어선 어떤 미(美)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단게 겐조의 성 마리아 성당을 본 이후, 이 믿음은 더 굳건해졌다. 그리고 내게 인생의 '성공'이란 어떤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누리는 소소한 여행들 — 여기 기록된 모든 글과 사진들처럼 — 에서 경험하는 순간들에 있다고 믿는다.
아, 왜 사이트 이름이 blank log냐고? 인생의 여백에 남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일상이 어떻게 매 순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설령 아름답더라도, 이를 깨닫는 것은 바쁨과 바쁨 사이, 여백의 순간에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만 가능하다. 그 여백에 담긴 기록들이기에, 블랭크 로그, 여백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