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터마이어 가든

“이태리에 꼬모 호수가 있다면
뉴욕에는 허드슨 강이 있다”

Untermyer Gardens Conservancy
William W. Bosworth
1940
Yonkers, NY, USA

2020

우리가 운터마이어 가든을 처음 방문한 건 2020년 가을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가 움츠러들었던 시기였고, 사진을 찍을 때만 제외하면 마스크를 쓰고 정원을 둘러봤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고, 가든 내부에 약 7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무료 주차장이 있었는데, 다행히 두어 자리가 비어 있어 바로 주차할 수 있었다.

운터마이어 가든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비스타(Vista)다. 내리막 언덕 양옆으로 일본 삼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계단은 이탈리아의 빌라 데스테를 모델로 설계되었다. 뉴욕의 빌딩 숲을 벗어나 잠시 이탈리아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계단을 따라 허드슨 강쪽으로 내려가면 둥근 전망대(Overlook)가 나타나고, 로마의 치폴리노 대리석 기둥 두 개가 우뚝 서 있다. 이 전망대는 서쪽을 향하고 있어 허드슨 강과 팰리세이드 절벽 너머로 지는 석양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아직 한살을 갓 넘긴 노아가 오래 걷기 힘들어 해서 유모차를 들고 나왔는데, 수백개의 계단을 용케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비스타 하단부에 위치한 전망대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가을 석양에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가족 사진. 아직 아가 아가한 티를 벗지 않은 수아의 뒷모습, 걸음마를 시작해서 한창 걷기 좋아 하던 노아. 그리고 한 손에는 마스크를 들고 있는 재인이 뒤로 뉴욕의 해가 지고 있다.
한 동안 우리 핸드폰 배경을 장식했던 가족사진 😍

2024

처음 운터마이어 가든에 갔던 게 2020년이었고, 정확히 2년 후인 2022년 가을에 다시 찾았다. 11월이었는데, 예년에 비해 훨씬 추웠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비스타가 어떤 이유에선지 문을 닫아 아쉬웠다. 제 아무리 예쁜 공간도 공사 중이거나 날이 좋지 않으면 경험이 제한적이라는걸 깨달은 날이었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2024년 10월에 다시 찾아갔다.

운터마이어 가든은 말 그대로 완벽했다. 지난 10년간 뉴욕의 가을을 경험했지만, 대부분은 여름이 길게 늘어졌고 (달리 말하자면 더위가 오래갔고 🥵) 분명히 달력 상으로는 가을인데 대부분 비가 오거나, 금세 날이 추워져서 제대로 즐길 틈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9~11월까지 예년보다 온도가 높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바깥에 나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오늘 날씨 너무 좋다' 라고 했던 날들이 참 많았다.

이번 방문에서는 유명한 비스타뿐만 아니라, 그 전에 있는‘벽으로 둘러싸인 정원(The Walled Garden)’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노아도 사진을 하도 많이 찍어 버릇해서일까, 재밌는 포즈를 취하곤 한다. 덩쿨 나무가 위에 있고, 이탈리아 건축 양식 중 하나인 '로지아(Loggia)' 양식의 공간이어서 유럽에 온 느낌이 들었다.
이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뒤로 작은 원형 극장이 있었는데 수아와 노아가 쉴 새 없이 이곳을 뛰어다녔다. 야외에 나오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서 좋다. 잠시 쉬려고 수아가 앉아 있을 때 찍은 사진.
비스타로 내려가는 입구. 생각보다 크기가 매우 작고 코너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을 넘어서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팰리세이드 절벽과 허드슨 강이 살짝 보인다.

작은 입구를 통해 비스타로 내려가면 양옆에 삼나무가 벽처럼 늘어서 있다. 그리고 비스타를 따라 쭉 내려가다 전망대로 가기 전 오른쪽에 조그마한 샛길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또 다른 정원이 있다. 이곳은 컬러 가든(The Color Garden)이라 불리며, 높은 나무들 사이로 허드슨 강과 팰리세이드 계곡이 보이는 장소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감사함이 절로 밀려온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도 어느덧 거의다 지나갔다. 아름다운 가을날, 이 시간과 날씨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물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전망대가 보이는 비스타 하단부의 계단 공간이다. 4년 전, 우연히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던 이곳. 재인이가 “이번에도 비슷하게 사진을 찍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고, 수아와 노아와 함께 다시 포즈를 취했다.

이제는 쉼 없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노아와 초등학생이 되어 호기심과 질문이 가득한 수아. 더 이상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되었고, 유난히 따뜻했던 가을날 평안한 마음으로 이 공간을 둘러볼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훗날, 두 아이가 어른이 되어 이 공간을 다시 찾았을 때,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하루는 느린데 1년은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4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2024년의 모습과 2020년의 모습.

A/A — About Architecture

“뉴욕에서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가을을 보내고 싶다면”

뉴욕의 고전 건축

운터마이어 가든은 내가 좋아하는 모더니즘(르 코르뷔지에, 미에스 반 데 로어 등이 개척한 모더니즘) 건축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이 정원은 1940년에 조성되었으며, 설계자는 MIT 케임브리지 캠퍼스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보스워스다. 그는 프랑스 에꼴 드 보자르에서 공부했으며, 미국 보자르 건축 양식의 대가인 카레레 & 헤이스팅스 건축사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았다.

올드 머니의 결정판, 운터마이어 가든

운터마이어라는 이름은 정원의 건축주인 사무엘 운터마이어에서 유래했다. 뉴욕에서 명성을 떨친 변호사이자 자수성가한 부자인 그는, 한 건의 소송으로 100만 달러를 수임한 미국 최초의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원예에 대한 열정으로 이 정원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당시 이곳에서는 60명이 넘는 정원사가 일했고, 가장 붐비던 날에는 3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정원의 크기는 약 17헥타르(5만 평)에 달했다. 운터마이어는 경쟁심 강한 성격 덕분에 당시 록펠러보다 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미국에서 손꼽히는 정원을 조성했다.